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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는데 죽지 않은 별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한다. 바로 탄생과 죽음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생명체에게만 탄생과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별'도 탄생과 죽음이 있다고 믿고 있다. 별은 우주공간에 흩뿌려진 '성간 물질'이라는 먼지와 티끌로부터 '탄생'한다고 생각된다.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이들 먼지들은 질량의 중심이 되는 지점으로 모여들어 온도를 높이고, 종래에는 핵융합을 스스로 일으켜 사방으로 강렬한 빛을 쏘아보낸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 우렁찬 목소리로 우는 것처럼, 별도 주위에 강력한 빛을 내보내며 자신이 태어났음을 우주에 알린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것 같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과 같은 별의 수명이 약 100억년 정도 되리라고 믿고 있다. 100억년.. 상상이 되는가? 인류의 평균 수명이 70세 근처임을 감안하면 우리의 생물학적 시간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커다란 숫자다. 하지만 밤하늘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별이 죽거나, 혹은 죽어가는 것을 관측할 수 있다. 아마 우리 은하에만 하더라도 최소 수천억개의 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서 '죽음'은 우리가 보기에 꽤나 흔한 광경이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행성상 성운들 

별의 죽음은 때로는 조용하고 수수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태양과 비슷하거나 더 작은 별의 경우, 생애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몸집을 크게 부풀린다.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르다 갑자기 파르르르 사그러든다. 작은 별들은 이렇게 조용하게 생을 마감하며 '행성상 성운'을 만들어낸다. 태양보다 커다란 별들은 화려하게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들은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들의 마지막도 역시 몸집 부풀리기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조그만 별들과는 달리, 이들은 풍선이 터지듯 모든것을 한꺼번에 주변으로 날려버린다. 터지고 남은 핵의 질량이 어느 수준 이하가 되면 커다란 별은 '중성자별'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터지고 남은 핵의 질량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중성자별은 다시 붕괴하여 끝도없이 수축하는, 먹이사슬의 끝판왕 '블랙홀'이 된다.

초신성 폭발의 잔해들 

이처럼 별은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그들의 삶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하지만 모든것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것일까? 천문학자들은 분명히 죽은줄 알았던 별이 버젓이 활동하는 경우를 포착하였다. 사실 이번에 포착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꽤나 유명했던 죽지 않은 별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바로 '에타 카리나(Eta Carinae)'라는 별이다.

용골자리. 서울에서는 관측할 수 없고, 제주도에서는 간혹 보인다. 

에타 카리나는 용골 자리에 있는 에타 별로, 우리로부터 대략 8천광년쯤 떨어진 녀석이다. 천문학자들은 약 170여년 전, 이 별이 폭발해서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초신성으로 말이다. 당시의 조악한 망원경들로는 이 초신성 폭발을 제대로 설명할 수도, 이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이 죽고 남긴 잔해인 호문쿨루스 성운(난쟁이 성운) 뿐이다.

호문쿨루스 성운 

하지만 망원경으로 그 성운의 중심을 들여다보게 되면, 여전히 두 개의 밝은 별이 쌍성을 이루며 돌고 있다. 분명히 별 주위에는 초신성 잔해로 보이는 것이 널브러져 있는데, 중심에는 별이 살아있다? 말 그대로 '죽었는데 죽지 않은 별'인 것이다. 무엇이 에타 카리나를 부활(?)시킨 것일까?

A별과 B별의 궤도 

이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선 타임머신을 타고 직접 폭발 당시로 가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천문학자들은 고심 끝에 신박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바로 천연 타임머신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천연 타임머신? 그게 뭐지? 라고 생각하는 게이들이 있을텐데, 사실 우리는 이 천연 타임머신을 지금 이 순간에도 이용하고 있다. 바로 '빛'이다. 빛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그 속도가 무한하진 않다. 따라서 우리가 물체를 인식하기 위해 빛은 물체에 반사한 후 '유한한' 거리를 이동하여 우리 눈에 도달해야 한다. 이렇게 유한한 거리를 이동하면서 일정 시간이 경과하게 되므로 우리는 결국 어떤 물체를 보든 그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이 우리 눈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만큼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빛의 메아리를 일으키는 별 주변의 먼지구름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천연 타임머신을 더욱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게 되었는데, 바로 'Light Echo'라 불리우는 방식이다. 간단히 물을 가지고 예를 들어볼까? 물 웅덩이에 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수면파가 만들어진다. 이 파동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되기도 할 것이다. 일게이들도 알다시피 동심원 형태로 뻗어나가는 수면파의 각 원(마루)은 동일한 시각에 발생된 것이다.


수면파가 발생한 지점 근처에 막대기를 세워놓았다고 하자. 막대기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수면파는 당연하게도 막대기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나간 녀석일 것이다. 그렇게 한 파동이 막대기를 지나치게 되면 막대기는 더이상 동일한 시각에 만들어진, '그 수면파'를 만나지 못할것만 같다. 하지만 주변에 장애물이 있어 수면파가 반사된다고 하면?


반사된 수면파 중에는 이미 막대기를 지나친 '그 수면파'의 일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면파의 일부는 다시 막대기를 지나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echo, 즉 메아리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Light Echo라 함은? 직역하면 빛의 메아리인데.. 빛도 메아리칠 수 있다는 뜻인가?? 답은 '그렇다' 만약 별의 뒤쪽에 커다란 먼지덩어리가 있어서 그 빛을 모조리 반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빛의 메아리를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B와 C 빛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빛은 유한한 속도를 지니기 때문에 우리가 물체를 보게 되면 우리는 그 물체의 과거를 본다고 했다. 자, 그럼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빛이 메아리를 친다.. 빛이 더 뒤쪽에 있는 먼지구름이나 성간물질 등에 반사되어 우리에게로 날아온다.. 더 뒤쪽.. 더 뒤쪽이면 그 별보다 더 멀리 있는거네? 그리고 그 구름에 반사되어 날아오는 거니, 훨씬 더 나중에 우리 눈에 들어오겠구나!

그렇다. 이렇게 메아리친 빛은 스트레이트로 지구에 쏘아진 빛과는 달리 조금 더 늦게 지구에 도착한다. 마치 반사된 수면파가 뒤늦게 막대기를 지나치는 것처럼.. 천문학자들은 이 빛을 이용하면, 우리가 몰랐던 에타 카리나의 과거를 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Light Echo라는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에타 카리나 주변에서 나오는 빛의 메아리를 칠레의 대형망원경으로 2003년부터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관측결과로부터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바로 쌍성인줄 알았던 에타 카리나가 사실은 3중성계를 이루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3중성계로 시뮬레이션한 에타 카리나. 중간에 커지는 별이 A별, 그 옆을 도는 것은 B별, 그리고 멀리 도는것은 C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 가까운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도는 쌍성 외에 커다란 궤도를 그리는 별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서로를 마주보며 도는 별을 각각 A, B, 그리고 커다란 궤도를 그리는 별을 C라고 칭하자. A별은 질량이 너무나도 커서 세 별 중 가장먼저 죽음에 이르기 시작한다.

B별은 A별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허나 이 별의 마지막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죽기 직전, 옆에 있던 B별이 방해를 한 까닭이다. 아직 젊고 새파랬던 그 별은 죽기 직전의 별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스를 냠냠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가스를 흡수한 A별은 태양질량의 100배에 이르는 극대거성으로 변하였고, 대부분의 수소 가스를 흡수당한 B별은 헬륨 핵만 남은 백색왜성 비스무리한 별이 된다.(그래도 태양질량의 30배 수준임) 

불안정한 궤도로 인해 A별은 거의 튕겨나간다. 

 이렇게 한쪽은 뺏고, 한쪽은 빼앗기니 궤도가 안정할 리가 있나? A, B, C 별을 구성하고 있던 3중성계는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C별은 결국 B별과 충돌하여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이 여파로 멀찌감치 돌고있던 C별은 점점 안으로 떨어져 결국 A별에 먹혀버리고 만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C별은 A별로 떨어지며 A별의 강력한 중력에 길게 늘어져 커다란 고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C별과 A별은 마침내 충돌을 하였고, 이 여파로 충돌지점과 그 반대편에 거대한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이는 오늘날의 호문쿨루스 성운을 만들어내었다.

빛의 메아리와 그동안의 연구결과로 재구성한 에타 카리나의 진화과정 

 꽤나 그럴듯한 주장이 아닌가? 수십년의 꾸준한 관측 및 연구결과와 더불어 과학자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탄생한 가설인 것이다. 정말로 에타 카리나는 삼중성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천문학자들은 '죽었는데 죽지 않은 별'을 밤을 새워가며 관측하고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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